[패션 읽기] ‘눈이 부시게’ 김혜자의 청재킷,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시공간 매개체

트렌드 2019. 02.19(화) 15:0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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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더셀럽 한숙인 기자] ‘눈이 부시게’는 극 중 김혜자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자의 표현대로 웃고 있는데도 슬프고 쓸쓸하다. 25살 청춘(한지민)이 하룻밤 새 70대 노인(김혜자)이 된 비틀린 시간을 살게 된 혜자의 삶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한지민의 내레이션과 김혜자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연기가 비현실적인 주제를 지극히 현실적인 색채로 그려낸다.

JTBC 월화 드라마 ‘눈이 부시게’ 2회에서 25살로 잠이 들어 70대 노인으로 깬 혜자는 방에 틀어박혀 한참을 울먹이다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녘에 로즈핑크 립스틱을 바르고 집에서 입고 있던 잔잔한 프린트 원피스 위에 청재킷을 걸친 후 캔버스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.

70대 노인 김혜자가 입은 청재킷은 시간 차 순으로 존재해야 할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이 드라마만의 시간성의 법칙을 설명하는 장치다.

통상적으로 노인에게 청재킷은 현재가 아닌 과거로 지난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이고 회상의 매개체다. 젊음의 한 단편이기에 노인들은 청재킷을 포멀 재킷만큼이나 빳빳하게 펴서 소중히 보관한다. 외출 할 때는 제임스딘을 오마주하듯 목 뒤에서 곧게 뻗은 깃과 목선이 수평을 이루도록 한 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젊은이들보다 더 꼿꼿하게 곧추서서 걷는다.

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고 싶지만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다리 때문에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 것으로 만족한다.

그러나 김혜자의 청재킷은 다르다. 외출에서 돌아와 어딘가에 대충 던져놔 구겨진 청재킷을 집에서 입고 있던 프린트 원피스에 그냥 툭 걸친다. 집 밖으로 나온 김혜자의 청재킷 역시 깃이 올려져있지만 자연스러움을 선호하는 또래 감성을 공유하는 25살 혜자(한지민)가 옷을 입는 방식이다.

축 처진 어깨와 동그랗게 말린 등, 그 위를 덮고 있는 구겨진 청재킷과 금방이라도 푹 껴져버릴 목을 듯한 감춘 깃, 손이 숨어들어간 주머니, 해결되지 않을 고민을 짊어진 25살 혜자(한지민)가 살고 있는 현재다. 그러나 그 옷을 입은 혜자(김혜자)는 50년 뒤에나 존재할 법한 미래의 혜자다.

지금의 장년층에게 청재킷은 신문물의 상징이었다. 6, 70년대 경제 성장기를 지난 이들은 청재킷을 입는 것으로 전쟁의 상흔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제임스딘처럼 ‘미제’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.

7, 80년대 민주항쟁기에 청춘을 보낸 중년들에게는 반항의 상징이지만 장년층에게는 이렇듯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.

반면 지금의 청재킷은 그냥 일상복이다. 그냥 쉽게 살 수 있는 옷, 그런데 어떤 레이블이 붙어있느냐에 따라 엄청난 가격차가 나는 옷이다. 그런데 내가 입는 청재킷은 SPA 브랜드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 만원에 쉽게 살 수 있는 내 삶의 때가 켜켜이 쌓인 그냥 생필품 같은 옷일 뿐이다.

이처럼 같은 70대 노인이라도 평범하게 세월을 지나온 노인과 ‘눈이 부시게’ 혜자(김혜자)의 청재킷은 다르다. 이 드라마는 청재킷을 매개체로 각기 다른 시점의 혜자를 한 시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.

김혜자가 연기하는 혜자는 25살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닌 그냥 25살 현재의 혜자다.

배우 김혜자는 50여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일어났어야 할 50년의 시간이 사라진 그냥 25세 혜자를 연기하기 위해 목소리를 얇게 하고 느린 말 속도를 젊은이들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.

이 때문인지 청재킷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온 몸으로 고민으로 내뿜으며 걷는 뒷모습이 한지민인지 김혜자인지 분간할 수 없게 했다. 노년의 배우가 하기 쉽지 않았을 법한 세밀한 묘사들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설정임에도 현실적인 느낌을 부여했다.

이런 배우로서 그녀의 노력은 25살 현재진행형이었어야 할 혜자(한지민)와 미래였어야 할 70대 혜자(김혜자)를 동일인물처럼 보이게 했다. 그래서 시청자들은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도 죄책감 없이 웃을 수 있다.

[한숙인 기자 news@fashionmk.co.kr/ 사진=JTBC ‘눈이 부시게’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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